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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함께 하시는 예수님
모리악의 (예수전)을 읽어 본 적이 있읍니다. 저는 예수전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이름이 있든 없든 모든 예수전을 만나는 대로 훝어 보았 읍니다. 2대 문인인 모리악은 (예수전)에서 자기의 신앙을 고백하고 싶 었읍니다. 그래서 이론적이고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기독론을 쓰는 것이 아니라 산 채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생한 전기를 쓰고 싶어서 그는 (예 수전)이라고 말했습니다. 기독론이 아니라 (예수전)이라고 말했읍니다. 도스토예프스키도 그의 수첩에 메모를 해 놓았는데 예수전을 쓰는 것이 평생 소원이라고 했읍니다. 모리악도 (예수전)에서 생생하게 참 그대로 의 예수님을 그리고 싶었읍니다. 물론 모리악도 근대 자유주의 사상이 팽창한 곳에서 살아왔읍니다. 그 는 청춘과 모든 열정을 그리스도에게 다 바쳤던 사람이었읍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의 소설적인 가공의 인물이 아니고 사람들이 만들 어 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 (예수전)을 썼읍니 다. 그는 역사 속에 살았던 모든 인물 중에서 예수님이 가장 생생한 사 람이었다고 주장했읍니다. 이런 구절도 있읍니다. '세상과 과학자와 철 학자들이 그리스도를 우리에게서 빼앗아 가 버렸다. 저녁 그림자가 짙어 오는 엠마오 마을로 내려가는 실의와 공포에 싸인 두 제자 곁을 함께 걸어가는 누군가가 있었다. ' 해 저무는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의 실망 한 가슴 속에 뜨거운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모 리악은 잃어 버린 그리스도와의 청춘을 다시 한번 회상시키는 것입니 다. 이미 낙엽이 지고 가을이 짙어 가는데 어디선가 다시 겨울을 지나서 마음 깊은 곳에 봄이 찾아오는 약속처럼, 이렇게 엠마오 도상으로 가는 제자들의 곁에서 제자들이 전혀 의식하지 못하게 가만히 말해 주던 예 수님이 우리의 인생 곁에 계십니다. 그 날에 저희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 오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촌으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 하더라 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 그인줄 알아보지 못하거늘(눅 24: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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