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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에 사는 신앙
어떤 가난한 시인이 늦은 가을에 낙엽들이 바람에 굴러가는 공원의 한 구석의 벤치에 앉아서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공산주의의 달콤한 선 전을 생각해 봅니다. 배가 고프고 춥고 가난하고 직업이 없는 이 시인 은 '빈부의 차이도 없고 실직자도 없고 골고루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사 회가 얼마나 좋은 곳인가? 왜 나쁘다는 것인가?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는 기독교의 사랑은 아무래도 배고프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공산주의에서 선전하는 배고 픔과 직통하는 그런 느낌이라든가 그런 투명 성이라든가 그런 직접성 같 은 것은 기독교의 복음에는 없지 않을까? 또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 의 여신들이 연애를 하고 질투를 하는 이야기처럼 내 말초 신경까지 짜릿하게 느껴 지게는 못하는 것일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저는 그것을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우리들의 생명은 사도들의 증언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읍니다. 오늘날의 많은 소설들을 읽어 보면, 그 소설들이 전달해 주는 공감은 복음서가 전달해 주는 공 감보다도 훨씬 투명하고 직접적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것과는 다릅니다. 성경에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 미하다고 말했읍니다. 어떤 신학자는 '그림자 있는 인식'이라고도 말 했읍니다. 또 다르게 말하면 몽롱한 밤에 보는 산과 같다고도 말할 수 가 있읍니다. 사도 바울은 '질그룻 속에 보배가 담겼으니'라고도 말했 읍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꺼져 가는 등잔불을 놓고 종이가 뚫어 져라고 아무리 쳐다봐도 보이지 않는 글자처럼 아물아물한 그런 인식이 기독교의 인식과 같습니다. 아직도 꿈에서 깨지 못하고 꿈속에서 부르 짖어 보고 사라져 가는 얼굴을 더듬어 가면서 쫓고 있는 그와 같은 것 이 우리의 경험 가운데 하나입니다. 분명한 보증 수표, 아무도 변경할 수 없는 확실한 보증 수표를 손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직 한번도 은행 에 가서 현금으로 바꾸어 보지 못한 현실처럼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하 신 것을 약속 속에 지니고 많은 날을 기다림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우리 의 신앙의 현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약혼한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처 럼 가장 확실하고 믿을 수가 있는 것이지만 어딘가 현실 감각에 소원 감각이 있는 것도 인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고후 4 : 7) (골 3 :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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