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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던 골고다 언덕에서는 지금 관광객들을 위해 지팡이를 판다고 합니다. 성지 순례차 예루살렘에 온 어떤 사람이 골고다 산상에서 지팡이를 파는 것을 보고 같이 못 온 고향에 있는 친구를 위해서 지팡이를 하나 샀습니다. 그리고 여행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 친구에게 줄 지팡이를 가지고 친구 집에 갔습니다. 그가 그것을 주면서 "같이 성지 순례를 떠났으면 좋았을 텐데‥‥‥자네 생각이 하도 나길래 주님의 십자가가 섰던 곳에서 이 지팡이를 사 왔네." 하자 그 친구는 빙긋이 웃으면서 "자네들 외에 또 나를 생각하는 분이 한 분 계시다네. 그 분은 예수님인데 십자가 위에서 그때 나를 생각하고 죽으셨다네."하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고 그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는 그 생각 속에 퍼가 묻어 있어야 합니다. 함부로 뇌까리듯 지나가는 말로 가볍게 예수의 이름을 부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뜨거울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 피 묻은 증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신앙이 피 묻은 신앙이 되어야겠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라가는 것은 피의 발자취이어야 하고, 우리의 생애 또한 피 묻은 생애가 되어야 합니다. 장난하듯이 믿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기분 날 때는 예배당 가고 기분 나쁘면 안 가고 돈 쓰다 남은 것 있으면 헌금하고, 그렇게 믿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퍼 묻은 십자가를 안고 피 묻은 생애를 살아야 할 사람입니다. 우리가 죽는다면 우리의 무덤 앞에 십자가가 세워질 것입니다. 주의 피 묻은 십자가를 내 무덤에 세워 놓았을 때 사람들이 보고서 '저 사람의 생애는 피 묻은 십자가, 퍼 묻은 발자취를 따라간 퍼 묻은 생애였다. '고 말할 수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다른 것에는 피상적일 수가 있지만 주님의 십자가 사실만은 퍼 없이 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1:18, 19)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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